english 日本語 사이트맵 바로가기 홈 바로가기 홈 바로가기
홈 바로가기
전시마당
전시관안내
상설전시실
백제의 왕궁 왕궁리유적
왕궁리유적의 백제건물
왕궁의 생활
왕궁에서 사찰로의 변화
백제왕궁
기획전시실
현재 전시 안내
과거 전시 안내
예정 전시 안내
체험학습 프로그램
   전시마당 > 상설전시실 > 왕궁의 생활     글자 글자를 크게 합니다. 글자를 작게 합니다.
   
금의 생산 PVR보기
  왕궁리유적의 서북편에는 금, 유리, 동 등 왕궁에서 필요한 귀중품의 생산과 관련된 제품과 원료, 도가니, 용재(slag), 숫돌, 노의 벽체 편, 토관 등이 수습된 공방폐기장이 확인되어 그 주변에서 이들 제품을 생산하던 공방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왕궁리유적에서 수습된 금은 제품 생산 전단계인 재료 상태의 금막대, 금종이, 금덩어리와 이러한 재료를 이용한 금연꽃구슬, 영락, 연결고리, 금구슬, 금판, 금못, 제품 생산과정에서 남은 금판 편 등이 수습되어 금의 제련, 정련과 함께 세공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제품을 확대 관찰하면 표면에 연마흔적, 단조흔적, 주조흔적, 접합흔적 등이 남아 있어서 금제품의 제작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유리 생산
  유리의 생산 여부는 유리제품인 유리구슬, 유리 편등의 출토와 유리를 생산하기 위한 도가니, 송풍관, 거푸집 등의 도구와 유리 원료인 석영, 유리의 가공에 사용된 숫돌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왕궁리유적에서는 유적의 서북편과 강당지 하층, 제 4석축의 중간 부분에서 금, 동제품과 함께 유리 거푸집을 제외한 모든 생산흔적이 확인되어 유리의 제련과 가공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왕궁리유적에서 출토된 유리제품은 유리구슬, 병과 같은 용기의 편, 두께 1cm 정도의 판유리 등으로 성분분석결과 납유리 외에도 지금까지 익산지역 백제유적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알카리유리가 확인되었다.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에서 출토된 납유리의 비교 결과 색깔, 성분구성, 비중, 납동위원소비 등이 모두 일치하여 같은 장소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추정해 볼 수 있다.
 
왕궁리유적 토기
  왕궁리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토기는 완, 합, 전달린토기, 접시, 뚜껑, 자배기, 호, 대호, 등잔, 병, 개배, 고배, 기대, 벼루, 시루, 파수부토기, 부뚜막형토기 등이다. 완, 합, 전달린토기 등은 백제 왕궁터로 전하는 부여 관북리유적 출토 회색토기와 같은 종류로 고운 태토를 사용하여 정교하게 만들었는데, 이러한 형태의 토기가 미륵사지에서는 몇 점 출토되었으나 백제고분에서는 출토되지 않고 있다.

개배, 고배, 기대, 벼루, 부뚜막형토기 등은 수점 또는 일부 편으로 출토되었는데, 기록이나 특별한 의식과 관련된 토기로 추정되며 토제 수각(짐승 모양의 다리)은 대형토기의 다리로서 의식과 관련된 토기로 보인다. 왕궁리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는 주변 사찰유적이나 고분유적 출토 유물과는 구분되고 다른 유적에서는 볼 수 없는 기종이 출토되어 유적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왕궁의 생활     
 

정원 관련 시설은 크게 중심시설과 주변시설로 구분된다. 중심시설은 화려한 괴석과 강자갈돌로 장식된 중심부, 입ㆍ출수부로 이루어져있고, 주변시설은 정원 중심부로 물을 공급하고 수량을 조절하기 위한 석조시설(石槽施設) 및 “ㄱ”자형의 배수로, 물을 받는 집수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어울리는 정원을 관람하기 위한 출입시설과 정자(亭子) 건물터도 확인되었다.

정원 관련 시설은 정원 중심부에 물을 받거나, 흘려보내는 등 그 역할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의 괴석을 사용하고, 장대석과 괴석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지형 자체를 크게 변형시키지 않으면서 석축과 적절하게 어울릴 수 있도록 조성한 점에서 백제인의 자연친화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대형 석조시설이 단순하게 판석을 세워 짜고 물을 가둬 두는 역할을 한 것뿐만 아니라 주변을 괴석과 강자갈돌로 화려하게 장식하여 미적 장식성 또한 엿볼 수 있다.

 
공방지
  유적의 서북편 지역 일대에서 유리, 금속제작용 도가니, 유리 금속 제품편, 슬래그, 숫돌, 벽체편, 석재 등이 다량 출토된 공방폐기지, 소토구, 소토폐기지가 발견되어 궁궐에 공급하기 위한 대규모 백제 공방의 존재가 밝혀졌습니다.
 
백제 화장실 문화
  지난 2000년 익산 왕궁리에서 백제시대 공중화장실이 발견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화장실터가 조사된 것은 익산 왕궁리유적이 최초입니다. 이러한 ‘화장실 고고학’은 화장실 터의 토양분석으로 고대인의 배설물을 조사하여 그 결과로 당대인들의 건강 상태와 식생활 환경 등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감염된 기생충의 분석을 통해 집단생활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형화장실은 좁은 수로를 통해 석축배수로와 연결되어 있어 화장실 내부의 오수가 일정하게 차게 되면 수로로 배출되는 정화조와 같은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대형화장실의 크기는 동서길이 10.8m, 남북폭 1.7~1.8m, 깊이 3.4m입니다. 또한 내부에서 나무기둥을 박아 공간을 구획하였고, 각 칸의 바닥에는 웅덩이가 파여져 있어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는 공동화장실로 추정됩니다.

화장실 내부의 벽면은 점토로 덧발라 내용물이 밖으로 빠져나가거나 외부의 지하수가 침투되는 것을 방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화장실 내부의 하층인 유기질층에서는 화장실임을 알려주는 기생충과 뒤처리용 나무막대가 확인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