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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왕궁박물관은 5개의 테마형식으로 구성되며 관람순서에 맞게 관람하시면 좋습니다.

아래 백제왕궁박물관에서 원하시는 전시관을 선택하시면 자세한 내용을 관람 하실 수 있습니다.

왕궁에서 사찰로의 변화

④ 왕궁에서 사찰로의 변화

  • 백제왕궁은 일정기간 운영되다 왕궁의 중요 건물을 철거하고 그 위에 탑과 금당, 강당 등 사찰로 변화된다. 왕궁에서 사찰로 변화되는 이유와 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는 없다. 발굴조사 과정 왕궁의 서측 담장과 북측 담장 주변에서 ‘대관관사(大官官寺)’명 기와가 다수 수습되었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8년 6월조에 ‘대관사의 우물물이 핏빛으로 변하고 금마군의 땅에서 5보가 흘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661년의 기록으로 금마군의 ‘대관사’가 왕궁리유적의 사찰 이름인 ‘대관관사’와 같은 사찰로 볼 수 있다면 왕궁에서 사찰로 변화 되는 시기는 늦어도 백제 의자왕대일 것으로 보인다.
  • 그렇다면 왕궁에서 사찰로의 변화계기를 알아보기 전에 백제왕궁의 운영시기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백제왕궁의 운영 중심은 백제 무왕대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시작과 끝부분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있다. 익산 경영의 시작은 무왕대 이전에 법왕이나 위덕왕까지 올려보기도 하고, 부여로 다시 돌아간 시기에 대해서는 의자왕대임은 분명하지만 일부에서는 무왕 말기로 보기도 한다.
  • 결국 백제왕궁을 경영하는 과정에는 왕궁유적의 왕궁이 운영되었지만 부여로 수도를 옮긴 이후에 사찰로 변화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가 무왕이 돌아가셔서 익산쌍릉에 안장되자 의자왕이 무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願刹)’로 운영하기 위해서 왕궁을 사찰로 변화 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한 이유는 왕궁의 중심축과 사찰의 중심축이 같고, 사찰의 배치가 일반적인 백제사찰과는 달리 탑과 금당, 강당은 있지만 회랑이 없고 대신 왕궁의 문과 담장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또한 사찰 건물이 들어서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백제왕궁의 건물도 남아 있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백제왕궁에서 사찰로 변화 되었지만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왕궁과 관련된 사찰로 볼 수 있는데, 사찰유적 주변에서 ‘왕궁사(王宮寺)’, ‘대관관사(大官官寺)’, ‘관궁사(官宮寺)’명 기와가 출토 되고 있어서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 왕궁에서 사찰로 변화되던 시기에는 현재와 같이 석탑이 아니라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탑 하부에서 폭 17m의 방형 판축층이 확인되었으며, 1965년 왕궁리5층석탑 해체보수 과정에서 품(品)자형의 사리공과 함께 8각 사천주 등 목탑의 내부 구조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왕궁에서 사찰로의 변화 관련사진01 왕궁에서 사찰로의 변화 관련사진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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