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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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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사

* 테마안내
태봉사로 향하는 길은 한적하다. 보통의 절은 높은 산과 계곡을 곁에 두고 있거나 사하촌이라는 마을을 거느리고 있다. 일반인들이 우러러 볼 수 있는곳에 자리를 잡는 것은 집 자리를 뜻하는 양택이 신분적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명산대찰이라는 말이 그렇듯 사찰들은 대개 큰 산의 기(氣)가 아주 승한 곳에 자리한다. 그러나 태봉사는 그 어느 절과도 다른 너무 평범한 곳에 위치해 있다. 태봉산은 이름만 들으면 정말 큰 산처럼 느껴지나 나지막한 야산이다.'태봉'이라는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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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준왕의 아들 태를 모신 곳

"준왕은 천하의 모든 것을 가졌으나 슬하에 아들이 없었다." 익산이라는 지명이 한반도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기원전 194년이다. 고조선의 준왕(準王)은 위만에게 쫓겨 이곳에 찾아 들었다. 이윽고 터전을 잡고 마한의 왕이 된 영험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득남을 위한 기도를 했다. 그래도 아들 소식은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어느 날 왕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봉황 한마리가 갑자기 높이 솟아올랐다. 왕은 눈이 부셔서 봉황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솟아오른 봉황이 자신에게 다가왔다가 다시 훨훨 날아 미륵산 넘어 어느 작은 산에 사뿐히 내려앉으며 꿈이 깼다. 상서로운 꿈이라는 것을 금새 알아 챈 왕은 봉황이 앉은 곳을 찾아 그곳에 석불(石佛)을 정성껏 모시고 기도에 정진했다. 기도를 시작한 지 백일이 지나자 왕비는 임신을 했다. 이후 왕은 세 아들을 얻었고 아들들의 태(胎)를 묻은 후 산의 이름을'태봉(胎峯)'이라고 불렀다.

태봉산과 관련된 일화는 백제의 무왕에게도 이어진다. 준왕때부터 이 산이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무왕은 이곳에 움집(幕)을 짓고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기도했는데 어느 날 삼존불상이 들판에서 비바람을 맞고 있는것을 발견하였다. 무왕은 즉시 사람을 시켜 이곳에 절을 짓게 하고는 태봉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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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은 들판에서 비바람을 맞고 있는 삼존불상을 보았다.오래된 역사만큼이나 태봉사의 창건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예전에 한 여자가 삼대독자인 아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산신기도를 하다가 산신의 현몽으로 아미타삼존불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지금의 사찰을 세웠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절은 허물어지고 불상도 땅에 묻혀 있었다. 그러다가 1931년경 심묘련(深妙蓮)이라는 여자의 꿈에 나타났다. 잠에서 깬 여자는 꿈에서 본 곳을 파내자 불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1955년에 세워진 지금의 태봉사 이야기다. 위의 전설들은 모두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오는 것이니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지금도 아들을 얻으려고 이곳에 와서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일종의 기자신앙(祈子信仰)적 성격이 강한 사찰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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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의 아미타삼존상

태봉사 삼존불상은 극락전에 모셔있다. 극락전은 원래 아미타여래를 모시는 곳이다. 그런데 수인(手印)을 보면 흔히 아는 아미타여래의 삼품삼생(三品三生)과는 사뭇 다른 전혀 별개의 수인을 하고 있다. 서방 정토에 있는 아미타여래의 광명은 멀리 퍼진다. 이 불상에 새겨진 부채꼴 모양의 거대한광배(光背)가 그것을 보여준다.

본존불은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앉아 있는데 머리에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을 붙여 놓았으며 둥근 얼굴은 이목구비가 작고 단정한 인상을 풍긴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통견의 옷자락은 주름을 처리한 양식을 보면 매우 형식적이며 무릎을 덮어 내린 자락은 대좌까지 덮고 있다. 얼굴에 비하면 체구는 좀 작아 보인다. 또 어깨와 손이 투박하게 표현되었는데 왼손은 내려 배에 대고 오른손은 들어 가슴에 대고 있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또 협시보살은 모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손에 지물을 들지 않고 합장을 하고 있다. 왼쪽의 보살은 가녀린 체구로 보아 관음보살로 보인다. 관음보살은 천수천안(千手千眼)으로 부처를 대신해 사람들을 직접 구제하며 소원을 들어주는 일을 하는데 현세의 복을 내려 달라는 의미로 관음보살을 택한듯하다. 동자승 형태의 오른쪽 보살상은 지장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죽을 때 제도를 하는 지장보살을 모심으로써 내세를 기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삼존불(三尊佛)은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보살로 아미타삼존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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