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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마룡
관광브랜드 캐릭터 ‘마룡’입니다.
무왕이 용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설화에서 창안.
우리 마룡이와 함께 고백도시 익산 여행하세요!

오금산과 오금사지

오금산과 오금사지

오금산 전경 오금산 전경

오금산은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있는 해발 125m의 야트막한 산이다. 하늘이 맑은 날 오금산 정상에 서면, 가까이는 왕궁리 유적이, 멀리는 모악산 능선이 어렴풋이 보인다. 서동이 마를 캐어 홀어머니를 봉양할 때, 이 산에서 금 다섯 덩이五金를 얻은 곳이라는 유래가 전한다. 산의 정상부에는 백제때 만들어진 토성이 있으며, 남쪽 기슭에는 왕이 된 서동이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오금사가 있었다고 한다. 오금산 부근의 마룡지, 서동생가터, 용샘 등에도 서동 관련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오금사지 출토 청동동경 오금사지 출토 청동동경 신증동국여지승람 ‘오금사’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 ‘오금사’기록

익산 백제문화유적의 원형적 가치, 오금산

서동은 오금산 자락에서 마를 캐어 생계를 유지하며,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서동은 오금산 자락에서
마를 캐어 생계를 유지하며,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린 서동이 오르내린 오금산에 오른다. 마를 캐며 효성으로 어머니를 섬겼다고 전해지는 서동. 서동의 다른 이름은 맛동이지 않은가. 오금산에 오르내리며 마를 캤고 마를 통해서 꿈을 이룰 수 있게 해 준 산.
오금산은 높이 120m정도 낮은 산이지만 오르다보면 육안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깊다. 또한 금마면 고도리 서쪽 5개의 봉우리가 연이어서 가로질러 있어 동서로 가로지른다면 꽤 많은 땀을 흘려야한다. 오금산은 낮은 산이지만 산 정상에 오르면 전주 모악산과 김제 만경평야까지 훤히 내려다보일 정도로 전망이 깊다.

《삼국유사》 무왕조에서 서동은 ‘나는 어릴 때부터 마를 캐던 곳에 황금을 흙 처럼 많이 쌓아 두었소’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익산에는 오금사五金寺가 있으니 서동이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를 섬겼고 마를 판 땅에서 문득 다섯 개 금덩어리를 얻었다.’고 기록한다.
또한, 《금마지》에서도 마를 캐다가 지극 정성으로 어머니를 섬기던 맛동이 어느 날 마를 캐던 산에서 금덩이 다섯 개를 얻게 되었다고 하여 오금산과 오금사라는 절 이름의 유래도 전해주고 있다.

문헌 속 오금산은 유년의 서동 모습과 함께 서동의 부의 축적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보여주고 있다. 마를 캐어 지극 정성으로 어머니를 공양하였고 그의 모습에 하늘도 감복하였는지 마를 캐던 뒷산에서 금덩이를 발견함으로써 어머니를 위한 절인 오금사를 짓고, 후에 임금이 되었다는 이야기.

하지만 현재는 오금사지五金寺址의 위치가 불분명하여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문헌 기록과 주변 지역에서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 볼 때 익산 토성(오금산성)이 위치한 곳에서 남측으로 떨어진 자리로 추정하는데, 오금사지에 대한 시굴조사에서 사지와 관련된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서동설화와 서동의 성장 주축을 이루었던 곳, 오금산. 서동은 오금산에서 마를 캐고 어머니를 봉양했으며 이곳에서 경제적 부를 축척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어머니를 위해 오금사를 지었다. 오금산은 백제의 왕을 키웠고 백제의 왕은 백제의 번영과 안녕 그리고 찬란한 백제 문화를 꿈꾸었다. 오금산 일대는 백제 문화유산의 원형적 가치가 묻힌 산이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무왕과 관련된 쌍릉, 오금산성, 왕궁리 유적 등이 오금산 일대에 산재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조사를 통해 이와 관련된 유적들도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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