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가. 자는 남신(南信), 본관은 수원(水原), 임실군 출신. 전주진위대(全州鎭衛隊) 대대장을 역임한 육군부령(陸軍副領) 백낙신(白樂信)의 아들. 방대한 재산을 상속받아 기업 형태의 사업을 벌였고, 5만석(石)을 호가하던 재산을 보람있게 쓰고자 소작인 1,200명을 불러 생활을 걱정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고루 혜택을 입을 수 있는 교육기관을 만들고 싶다.’라는 만년의 뜻을 받들어 부인 이윤성(李潤成)씨가 해방이 되면서 토지 1백 4만 8천평(농지개혁으로 인한 지가증권)을 화성학원(華星學院)에 희사, 남성학교(南星學校)를 설립하였다. 남성중·고등학교와 남성여자중·고등학교는 이제 호남사학(湖南私學)의 명문으로 그 권위를 자랑할 수 있게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