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교육자. 본명은 극(極), 법명은 선산(禪山), 본관은 해주(海州), 출생지는 전남 장성군. 휘문고보와 상해(上海) 동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상해 항일청년회(抗日靑年團) 회장·해외 한인청년총연맹(韓人靑年總聯盟) 중앙집행위원장·상해 임시정부 국무위원(國務委員) 등을 역임했다. 귀국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일제 말기에는 불교에 귀의하여 입산 수도했다. 해방 후 1947년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맡고 1951년 이리농과대학에서 1952년에는 광주 농과대학(현 전남대 농대)교수로 봉직하다가 1968년 정년퇴임했다. 1965년 광주에서 원불교에 입교하여 1968년 익산군의 원불교 총부에 들어와 있다가 1974년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초대 학장이 되고, 원불교의 중앙요양원을 설립하여 원불교 교역자(敎役者) 진료의 총책을 맡았다.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건국포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