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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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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왕궁리오층석탑

  • 추천계절 : 봄,  여름 
  • 권역정보 : 왕궁오층석탑 관광권역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74
  • 문의처 : 063-859-4631
  • 구   분 : 유적지,  기타,  국보,  국가지정문화재 
  • 홈페이지 : http://wg.iksan.go.kr
  • 문화재지정번호 : 국보 제2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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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개요

고려 전기의 석탑, 왕궁리 오층석탑(국보289호) 왕궁리 오층석탑은 마한시대 도읍지로 알려진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서 남쪽으로 2㎞쯤 떨어진 곳에 있는 석탑으로 1997년 1월 1일에 국보 제289호로 지정되었다. 1기단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에 해체·수리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1965년에 해체·수리하면서 탑의 1층 지붕돌 가운데와 탑의 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이때 발견된 고려시대 유물은 국보 제289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상세정보

국보를 품고 있는 국보 289호

 

이 석탑은 왕궁평성 중앙의 대지위에 자리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왕궁탑’이라고 부르고 있다. 높이 8.5m의 장중한 탑으로 1965년 해체보수되기 전까지만 해도 토단(土壇)을 갖춘 희귀한 석탑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해체복원 결과 원래 돌로 기단(基壇)을 구성하였음이 밝혀져 이를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이 탑의 구조를 보면 기단부는 기단 면석의 각 면이 2개의 탱주(撐柱)와 우주(隅柱)가 조각된 3매의 돌로 깎아 맞추었으며, 하대 갑석 또한 1면을 3매의 돌로 쌓았다.
  탑신부에 있어서 초층 몸돌은 각 면의 중앙에 1개의 탱주와 모서리에 우주를 조각하였으며 전부 8개의 돌로 이루어졌다. 지붕돌은 층급 받침이 3단인데 지붕과는 별도로 4매의 돌로 조성하여 그 위에 지붕돌을 얹졌는데 지붕돌은 평평한 모습을 보이며 네 귀에서 가볍게 들리어 있어 전형적인 백제계의 석탑이라고 하겠다. 현재 상륜부에는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仰花) 그리고, 부서진 보륜(寶輪) 1개가 남아있다. 1965년 해체 보수 중 제 1층 지붕돌의 중앙과 심초석(心礎石)에서 각각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지붕돌에 사리장엄구를 장치한 석재는 백제시대 주춧돌으로 사용한 석재를 사용하였으며, 좌우 두 곳에 4각형의 홈( 凹 )을 만들고, 뚜껑이 있는 금동제 함을 각각 장치하였다. 동쪽 금동제 함 속에는 금으로 된 뚜껑이 있는 네모꼴의 함이 들어 있었으며, 그 안에는 다시 금으로 만든 연꽃무늬 대좌를 갖추고 연꽃형 뚜껑을 갖춘 녹색유리의 사리병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서쪽 역시 금으로 된 뚜껑 있는 네모꼴의 함 안에서 금강경판(金剛經)이 발견되었다.
  기단부의 심초석(心礎石)에 설치된 사리공은 ‘品’자형으로 되어 있었는데 동쪽 구멍에는 배 모양의 광배(舟形)를 갖춘 청동여래입상과 청동방울이 들어 있었다. 북쪽 구멍에는 향류(香類)가 발견되었으나 서쪽 구멍은 일찍이 도굴 당하였다. 이들 금강경판 등의 사리장치는 국보 123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 전주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이 사리장치는 “관세음응험기”의 제석사지 화재기록에서 나오는 사리장치들과 내용이 흡사하여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탑의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백제시대 설과 통일신라 설, 그리고 고려 초기 설이 대립되어 주장 되고 있었다. 그러나 발굴결과 탑의 하부(下部)에서 다져쌓기로 조성된 건물지 흔적이 발견되어 석탑의 조성 연대는 백제시대보다는 다소 늦은 시기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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