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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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유적(Archaeological Site in Wanggung-ri)
- 익산시 왕궁면 용화산 남쪽 끝 해발 40m내외의 구릉에 위치한 왕궁리유적이 백제의 궁성터라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대동지지』(김정호)의 ´익산 별도別都´ 기록과 「관세음응험기」(일본 청렴원 발견)의 ´백제 무왕 지모밀지枳慕蜜地 천도´기록이 왕궁리유적의 소재지명인 왕궁면의 ´왕궁王宮´과 연관되어 백제의 무왕 혹은 보덕국의 안승, 후백제의 견훤이 경영하였던 왕궁터로 인식되어 왔으나 발굴조사를 통해 무왕대에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 왕궁리유적은 평지성 구릉에 남북 492m, 동서 234m, 폭 3m 내외의 궁장을 두른 후, 내부에 경사면을 따라 4단의 석축을 쌓고 평탄대지를 조성하여 정무공간과 생활공간, 후원공간을 배치한 궁성유적이다. 궁성으로의 역할이 끝난 뒤에는 탑-금당-강당으로 구성된 1탑 1금당식 사찰로 그 성격이 변화되었는대, 이는 유적의 중심부에 있는 오층석탑과 그 주변에서 조사된 건물지를 통해서 밝혀졌다.
- 최근 발굴조사에서 전각건물로 추정되는 대형건물지, 백제의 자연친화적 조경기술을 보여주는 정원시설 등의 궁성관련 유구가 밝혀지고 전달린토기, 8엽단판연화문수막새와 인장와(「수부首府」명기와 등), 유리·금제품, 도가니 등 총 10,0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백제 왕궁의 면모가 더욱 선명해졌다.
- 유적의 중심부에서 조사된 대형 건물지와 그 주변에서 출토 된「수부」명인장와는 부여의 추정 왕궁터인 관북리 백제유적에서만 조사되고 있어서 이곳 왕궁리유적 또한 백제의 무왕이 거주하였던 왕궁이었음을 입증해 주고있다.
궁성 내부 전반부에 정전 건물을 두고 후반부에 후원을 배치하는 조영방식은 중국 북위 낙양성洛暘成의 궁성배치방식과 비슷하여, 정원시설이나 대형 화장실 유구 등의 부속시설은 일본 평성경平成京유적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왕궁리유적´을 통해 한·중·일 삼국의 문화교류 모습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