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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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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곡사

* 테마안내
심곡사(深谷寺)라는 이름에는 세상의 속물스러움을 과감하게 버리겠다는 노승의 단호함이 배어 있다.

심곡사

심곡사를 속으로 되뇌이면 아주 깊은 계곡에 있는 절이라는 느낌이 든다. 익산처럼 평야가 즐비한 땅에 깊은 계곡이 어디 있을까? 산악지대에 살았던 사람이나 오지를 돌아다녀 본 사람이라면 '심곡(深谷)' 은 익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심곡의 깊이는 세상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심상의 것이리라. 심곡사는 실제 깊은 골짜기에 있지 않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의 심곡사를 정서적인 깊이로 상상한다.

익산에 사는 사람이라면 미륵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높이가 430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의 규모에 비해 전국의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평지 돌출형의 암산인 미륵산은 김제의 모악산과 함께 오랜 세월 신령스러운 산으로 추앙받아왔다. 미륵산은 원래 용화산이다. 그런데 미륵사가 건축되면서 산 이름이 미륵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불가에서 후생세계를 구원한다는 미륵, 하긴 미래의 구원을 바라는 것은 익산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모악산에 금산사가 있다면 용화산에는 그보다 더 오래 전에 규모가 더 큰 미륵사가 있었다. 미륵사 창건은 한 국가의 중흥이 걸린 국책사업이었다. 백제의 부흥 노력을 짚어보면 미륵산이 갖는 역사성이 돋보인다. 미륵산은 단순한 산이 아닌 희망이었고 종교였다. 심곡사는 그 미륵산의 심장처럼 산의 가슴속에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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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곡사 가는 길은 문명 저편의 풍경처럼 보인다

그 길엔 정취가 넘친다. 아니 길을 걸어가면서 시간이 뒤로 흘러가는 걸 느낀다. 절 입구인 장암마을 자체가 더 그렇다. 고샅길에 돌담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운치를 더한다. 마을을 지나자 구불구불 산길이다. 비록 콘크리트로 포장 돼 있다고 하나 고적하기 이를 데 없다. 가는 길섶에 커다란 교목(喬木)이 서 있는 것도, 물이 흐르는 것도 아닌 그저 오솔길일 뿐이다. 봄이면 버들가지가 연둣빛으로 피어오르고 가을이면 길 옆 억새들이 차창에 부딪히며 도열한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이렇듯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이런 큰 산이 주는 혜택일 것이다. 심곡사로 접어들수록 호남평야의 작은 삿갓같은 미륵산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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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곡사 입구에 들어서자 먼저 맞이하는 곳은 무인(無人) 찻집이다. 주인이 없는 찻집! 어찌 주인이 없겠는가? 사람이 와도 구태여 그곳을 지키거나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 주인이 없을 리는 없다. 찻집 안은 언제나 정갈하다. 전기주전자에 다기(茶器)가 가지런하다. 이 지역의 자연과 사람들이 그렇듯 밖에서 본 것보다 안이 더 멋스럽고 정겹다. 한옥 창에 비치는 은은한 빛, 그리고 맑게 닦인 창 너머로 보이는 나무와 숲들이 그림이다. 무인 찻집에 혼자 앉아 차를 끓여보라. 하긴 이런 곳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도둑질이나 하는 것처럼 불편할 것이다. 때론 사람이 있을 때가 더 편한 경우가 많으니까. 주인은 고요를 주려고 무인 찻집이라 내 걸었을 것인데, 정작 그 고요와 자유를 누릴 손님이 익숙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다. 주인이 없는 찻집의 고적함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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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지장·관세음보살 목조삼존불좌상

심곡사는 신라 때 무염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무염대사는 신라 선문구산(禪門九山) 중에 하나인 성주산문(聖住山門)의 개조이다. 무염대사는 아홉살 때 해동신동(海東神童)이라는 아호를 받았고 12세에 출가하여 설악산 오색석사(五色石寺)에서 법성(法性)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정조사(正朝使) 김양(金陽)을 따라 당나라에 가서'화엄경'을 배우고, 불광사(佛光寺)의 여만(如滿)을 찾아가서 선법(禪法)을 물었는데 이렇게 20여 년을 중국 전역을 보살행(菩薩行) 하였다. 충남 보령군 성주사지에는 국보 제8호로 지정된 그의비가 있어 그의 일화를 전한다.

심곡사의 대웅전은 조선 후기의 건축이다. 팔작지붕의 전면 세 칸 측면 두칸의 아주 단아한 건물이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불상 역시 이 건물이 지어지면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앞에 있는 칠층석탑이 하나 있다. 원래는 심곡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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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린 탑신에서 외롭고 쓸쓸함이 느껴진다. 탑의 조형미에 대한 설명은 심곡사 탑이 이름처럼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형식은 신라의탑과는 사뭇 다르며 그렇다고 다층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 고구려 형태도 아니다. 대부분 오층석탑인 백제양식에도 차이가 있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탑의 여기저기에서 미륵사 서탑에서 보이는 백제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탑신은 연약하고 옥개석의 경사가 완만하며 옥개받침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다. 단지 받침부분에 나타난 고려시대 탑의 양식과 지붕돌받침에 나타난 조선시대 탑의 양식 등으로 볼 때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양식이 혼재된 것이다. 탑의 일부가 나중에 고쳐진 흔적이 있는데 탑신과 옥개석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지만 정감이 간다.

심곡사에서 관심 있게 봐야 할 것이 명부전(冥府殿) 안에 모셔진 26구의 지장보살과 시왕, 그리고 그 권속이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공간이다. 지장전(地藏殿)은 지장보살만 모신 전각인데 이곳에 시왕을 같이 모실 경우 명부전이 된다. 불가에 의하면 지장보살은 죽은 사람을 제도하는 보살이다. 그래서일까. 지장전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에 슬픔을 엿본다. 지장전은 대웅전의 오른 쪽에 있다. 내부에는 지장삼존상을 중심으로 하여 시왕과 동자상, 사자상과 금강역사 등이 펼쳐져 있다. 출입문 양쪽에선 금강역사는 근육이 불끈 솟아 있어 보는 사람까지 힘이 솟게 만든다.

금강역사는 원래 인도 토속신으로 추앙 받았으나 불교에 들어와 잡귀를 몰아내는 수호신으로 변화했다. 금강저를 들고 눈을 부릅뜨고 입을 다물고 있는 근육질의 모습은 그 자체가 위협적이다. 사악한 사람을 힘으로 제압하기 위한제도(濟度)를 표현한 것이라는데 죄 짓고는 불사도 못 찾을 일이다.

심곡사의 명부전 형태는 호남북부지방의 대표적인 사찰인 완주의 송광사나 익산 웅포의 숭림사 등에서 나타나는데 모두 17세기의 양식들이다. 송광사나 숭림사에는 지장보살과 권속들을 둠으로써 중심에 있는 부처의 존위를 높인 것이다. 또 이들 사찰에서는 불상들을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불이라는점도 특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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