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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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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시대는 철기와 토기의 제작 기술이 보다 전문화되고 체계화되어 일상생활에 큰 변화가 생겼으며 전문적인 장인집단이 출현하였다. 목제 농기구와 함께 철로 만든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경문화가 한 단계 더 발전하였으며, 노동력과 시간을 아껴 주어 한 번에 많은 양의 곡식을 수확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농경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도 정기적으로 행해졌는데 이는 해마다 5월과 10월에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철제 농기구는 생산력을 높여 주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생겨나 계급에 따른 빈부의 차이가 심해졌다.

사람들은 철을 사용해 농기구뿐만 아니라 칼·창·화살촉 등의 무기와 말갖춤을 만들었다. 철기의 사용은 사람들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으며, 더욱 강력한 국가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다.

마한의 주거지

마한의 집은 30~40cm 정도 낮게 땅을 파고, 내부에는 4개의 기둥을 세운 수혈주거지가 가장 특징적인 주거 형태이다. 청동기시대나 초기철기시대에 비하면 땅의 깊이가 낮아 백제시대의 지상 건물로 변화하는 중간단계로 볼 수 있다. 집의 내부에는 난방, 조리, 조명을 위해 한쪽 벽에 부뚜막, 배연시설을 설치하였으며, 처음에는 흙으로 만들다가 부분적으로 토기 편과 돌을 혼합하여 만들었다. 집의 평면 형태는 방형계와 원형계로 구분되며, 방형계는 서부 해안지역과 금강 하류지역에서 주로 확인되고, 원형계는 동부 내륙지역과 금강 상류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마한인의 식생활

익산지역의 마한유적에서는 부뚜막 이외에 식생활과 관련된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광주 신창동유적에서 탄화미, 벼껍질, 보리, 오이씨, 박씨, 동물뼈, 민물조개껍질 등과 김제 심포리유적에서는 탄화된 곡물과 팥이 출토되어 마한사람들은 곡류, 채소류, 육류, 해산물 등 다양한 음식물을 섭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경 생산력이 더욱 증가되어 곡물의 섭취량이 늘었으며, 다양한 먹거리가 등장하면서 솥, 국자, 밥그릇, 칸막이접시 등 다양한 식기도 갖추어졌다.

마한의 토기

마한의 토기는 빠른 회전 성형이 가능한 물레가 사용되고, 높은 온도에서 소성이 가능한 지하 또는 반지하식의 오름가마(登窯)에서 생산되어 주로 회색을 띠고 단단하여 실용적이었다. 그릇의 표면에는 격자무늬, 삿무늬, 톱니모양의 거치문 등을 새겼다. 취사용기인 계란모양토기, 바리, 시루 등과 무덤의 껴묻거리인 겹아가리단지, 두귀단지, 짧은목항아리, 구멍뚫린 항아리, 새모양토기 등 종류가 다양하다.

마한인의 꾸미개

마한인들은 금, 보화, 비단을 귀하여 여기지 않았으며 오직 구슬을 귀히 여겨 옷에 장식하거나 귀나 목에 매달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문인지 구슬은 이 시기의 무덤유적에서 많은 양이 출토되고 있다. 익산 간촌리 토광묘에서는 관옥, 소옥, 곡옥, 환옥이, 율촌리고분에서는 유리옥, 마노 등이 출토되었다. 송학동유적에서는 유리옥이 붙어 있는 상태의 거푸집이 출토되어 마한시대의 다양한 장신구와 유리옥의 제작기법을 살펴 볼 수 있게 되었다.

마한의 무덤

마한의 무덤은 토광묘, 주구묘, 분구묘, 옹관묘 등이 있다. 주구묘는 매장주체부 주변에 주구(도랑)를 두른 마한시대의 특징적인 무덤 형태로서 한반도의 중서부지역을 따라 확인되고 있다. 영등동유적의 주구묘는 규모면에서 대형에 속하는 것으로서 마한시대 이 지역의 유력한 세력집단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분구묘는 주구묘의 평면적인 무덤 형태가 상하 중첩되면서 다장 형태로 변화하고 높은 분구가 만들어지는 무덤이다. 황등 율촌리고분은 주구묘 단계에서 분구묘 단계로 변화되는 유적이다. 분구묘는 상하 중첩과 평면적인 중복과정을 거쳐 영산강유역의 대형옹관묘로 변화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