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서봉(洪瑞鳳, 1572∼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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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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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 자는 휘세(輝世), 호는 학곡(鶴谷), 시호는 문정(文靖), 본관은 남양(南陽). 익산 출신. 도승지 천민(天民)의 아들. 1590년 사마시에 합격. 159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조좌랑·교리·응교·사성을 역임하고, 1608년에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1609년 문과 중시에 갑과로 급제했다. 1612년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의 장인 황 혁(黃 爀)이 화를 입자 이를 변호하다가 파직, 그후로 벼슬을 단념하고 은거했다. 1623년 인조반정에 공을 세워 병조참의(兵曹參議)가 되고, 정사공신 3등으로 익녕군(益寧君)에 봉해졌다. 1628년에 유효립(柳孝立)의 모반 음모를 고변한 공으로 다시 영사공신 2등이 되고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에 올랐으며, 이듬해 이조판서, 1633년 예조판서가 되어, 1635년 대제학을 겸임하였다. 이듬해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승진. 세자 사부를 겸했으며, 이해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최명길(崔鳴吉)과 함께 화의를 주장하였고, 김신국(金藎國)·이경직(李景稷)등과 수차에 걸쳐 청나라 진영에 왕래하며 항복의 절차를 협의했다. 1639년 부원군에 진봉(進封), 이듬해 영의정에 올랐다가 1644년에 좌의정으로 전직, 이듬해 소현세자(昭顯世子)가 급사하자 봉림대군(鳳林大君 : 孝宗)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고 소현세자의 아들로서 적통을 잇게 하라고 주장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문장과 시에 능하고, 그 글씨도 뛰어났다.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시조 1수가 전한다. 문집 <학곡집(鶴谷集)> 인쇄본 10권 4책이 전해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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