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리 즉 판소리하면 흔히 전북, 그 중 전주나 남원을 떠올린다.
익산이 우리나라 소리의 계보를 잇는 도시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소리의 종가 전북을 이끈 이들 대부분 익산 태생이거나 연이 있다.
금강과 만경강이 품어 앉은 풍요로운 생명의 땅 익산이 낳고 품어 기른 소리꾼이 얼마나 많은지 그 소리는 또 어떻게 오늘로 이어지고 있는지. 소리종가 전북의 숨은 꽃 익산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 떠나자.
# 떡목음악회가 왜 심곡사에서 열릴까?
4월 자연이 봄의 향연을 보여줄 산사에서 소리의 향기에 푹 빠져봄이 어떨까?
낭산에 있는 조용한 산사 심곡사에서 4월 21일 토요일 오후 3시 음악회가 열린다. 제1회 심곡사 떡목음악회.
생소한 ‘떡목’은 고음부의 음역이 좋지 않아 자유로운 소리 표현이 안 되는 목을 말한다. 이런 목으로 타고난 소리꾼은 아니었지만 근세 5대 명창의 반열에 오른 분이 정정렬 명창이다.
그는 19세기 말 조선적인 판소리 시대가 서서히 끝나갈 무렵 익산 망성에서 태어났다. 떡목이란 악조건 속에서도 심곡사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견디며 소리공부에 매진했다. 그리고 오랜 수련 끝에 마침내 득음을 했다.
역경을 오히려 희망으로 바꾼 정정렬 명창의 득음을 기념하는 떡목공연장이 올해 1월 심곡사 인근에 건립되었다. 이에 심곡사에서 (사)한국국악협회 익산국악진흥원과 함께 가족, 연인, 친구 등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산사음악회의 첫발을 내디뎠다.
<< 제1회 심곡사 떡목음악회 >>
- 일 시 : 4월 21일(토) 15:00
- 장 소 : 정정렬 명창 득음기념 떡목공연장(미륵산 심곡사 내)
- 사 회 자 : 박범수(개그맨)
- 프로그램
< 제1부 국악의 향연 >
익산시립풍물단(사물놀이), 최승희 명창(여는 소리)
임화영 외 4명(성주풀이, 진도아리랑), 전종건(한량무), 모보경(춘향가)
박성열(홍보가), 채순자 무용단(살풀이)
<제2부 포크와 만남>
이승훈(비오는 거리), 청춘시대(청춘시대), 하윤주(당신은 나의 운명)
The Best(중독), 윤태규(마이웨이)
- 문의처 : 대한불교조계종 심곡사 ☎063-855-2001 |
# 익산의 소리꾼 우리나라 판소리를 이끌다
- 최초의 소리꾼 권삼득, 가왕 송흥록, 근세5명창 정정렬
요즈음 아이돌 가수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린 잘 나가는 근세 전후기 8명창이 있었다. 순조 때는 권삼득, 송흥록, 모흥갑, 염계달, 고수관, 신만엽, 황해천, 김계철 등이고 철종 때는 박만순, 이날치, 송우룡, 정창업, 김세종, 장지백, 김창록, 김찬업 등이다.
이 중 최초의 소리꾼인 권삼득은 완주 용진면에서 태어났으나 팔봉동 남산리에서 살았다. 양반일 수 없었던 천생 광대였던 비가비 명창 권삼득은 흥부가를 특히 잘 불렀다고 한다.
판소리를 집대성하고 동편제 소리라는 전통을 세운 가왕 송흥록은 웅포에 태어났으며 사후에는 입점리 근처에 묻혔다. 수궁가로 이름을 날린 신만엽은 여산에서 태어났다. 박유전의 서편제 소리를 전수받은 정창업은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으나 망성면 내촌리에서 살았다.
이러한 국악 계보는 망성 출신 근세 5명창이며 창극의 아버지인 정정렬, 여산 출신 박동진, 황등 출신 조통달 명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익산의 출신 소리꾼들이 우리나라 소리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4년 창립된 익산국악원(옛 이리국악원)에서는 오정숙 명창을 비롯한 일본과 서울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춘흥, 김수연, 박성숙, 김성숙 등 많은 국악인을 배출하였으며 연례적으로 국악발표회를 개최하였다. 현재는 국악신동 박성열 군 등 많은 꿈나무들이 국악인의 꿈을 키우고 있다.
# 함라 3부잣집 한국의 메세나 운동을 선도하다
“인심(人心)은 함열(咸悅)이라”고 전라감사 이서구가 호남가에서 말한 함열 지금의 함라는 조선후기 양반가옥의 정취와 인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일찍이 함라에는 부자가 많았다. 천석꾼이 4호, 백석 이상의 부자가 20여 호 살았다. 특히, 당시 만석꾼이 전국적으로 90여명에 불과하던 시절 담장을 사이에 두고 이배원가(家), 김안균가(家), 조해영가(家) 등 만석꾼 3부잣집이 있었다.
이들 3부잣집에서는 흉년이면 사람들에게 곡식을 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큰 포구인 웅포와 강경을 기반으로 한 광대와 예인들을 데려다가 자주 연회를 베풀어 고단한 삶에 재미와 즐거움을 선물했다.
인심 좋다고 입소문이 난 3부잣집에는 과객들과 전국의 타고난 소리꾼들이 모여들게 된다. 우리 소리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풍류를 즐길 줄 알았던 3부잣집은 소리꾼에게 먹고 자는 일은 물론 노자 돈을 풍족하게 주는 등 후하게 대접했다.
특히, 이배원가(家)의 이집천은 교육사업가이며 서예가로 명성을 날리게 되며 당대 최고의 서벽정이라는 별장을 지어 풍류객들이 찾아들도록 했다.
임방울, 박초희, 박동진 등 당대의 풍류객과 소리꾼들은 이곳 함라를 거치 가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성을 날렸다.
# 깊이와 폭이 남다른 익산의 소리맥에 놀라다!
- 민속음악 ~줄풍류까지, 서민~선비까지
익산은 우도농악과 좌도농악, 민속놀이부터 줄풍류, 범패음악까지 깊이와 폭이 남다른 소리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익산에 전승되어 온 이리농악은 호남우도농악에 속하며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1-다호로 지정되었다. 가락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변형 연주되어 리듬이 다채롭고 상쇠의 부포놀이, 장구의 가락과 춤, 소고춤의 기법이나 진풀이 등이 발달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단장인 김형순 씨는 이리농악 설장구 기능보유자이다.
또, 좌도농악 전수자인 이인수 선생님은 성당포구에서 자란 분으로 현재 세계소리축제에서 공연을 하고 전라도와 충청도 등을 돌아다니며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익산에는 작대기로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부르는 ‘지게목발노래’와 각 마을의 농기를 앞세우고 세배의 예를 갖추는 독특한 놀이인 ‘기세배놀이’ 등 서민들이 즐긴 농요도 잘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다.
익산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정악인 줄풍류의 맥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익산에는 줄풍류의 전통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이리향제줄풍류(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83-나호)는 가야금 부분의 기능보유자로 강낙승(姜洛昇), 장고기능 보유자로 이보한(李輔韓)등이 있으며 정기공연과 강습을 통해 그 맥락을 잇고 있다.
특히, 거문고 산조의 명인인 신쾌동이 익산삼기 출신이다. 그는 거문고 산조의 창시자인 백낙준에서 산조를 배웠으며 이에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를 만들었다.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후진양성과 창극운동에 앞장섰다.
한국음악의 한 요소인 불교음악 범패의 창시자도 익산 금마출신인 진감선사(진감국사) 혜소스님이다. 혜소 스님은 범패를 전하여 소리로써 교화하였고 이는 한국 불교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혜소 스님이 고향 금마를 왕래하면서 들린 익산 인근 봉서사에 범패를 전해주었다. 현재 봉사서 영산작법이 전라북도지정 무형문화재 18호로 지정되었다. 삼기 석불사 등 익산 인근 사찰 스님들 중 범패 고수가 많은 것도 우연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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