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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및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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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시대에는

  • 통일신라시대에는 칠성군, 고려시대에는 함열현 의 도내 산은소(山銀所) 또는 창산소(倉山所)라 하였는데 충숙왕 8 년(1321)에 산은소 사람 백안부개(伯顔夫介)가 원나라에 있으면서 본국에 공이 있어 용안군으로 승격되었고, 공양왕 3년(1391)에 전주 속현인 풍저(豊儲·豊堤)와 합하였다가 조선 태종9년(1409)에 함열현과 합하여 안열현(安悅縣)이라 했으며, 태종16년에 다시 함열현과 분리되어 용안현이라 했다

고종 32년

  • (1895)에 현을 군으로 개칭했고, 1914년 용안현의 전지역이 익산군 용안면이 되었는데 교동·덕용· 중신·창리·용두·법성·석동·난포·송산·동지산·칠목·구산· 용성·대조·흥왕·화배·화실리의 17개리로 되어 있다가, 1970년 7월15일 용동출장소를 두었다가 1986년 3월27일 용동면으로 승격되었음.
행정구역명칭의 유래
  • 교동리(校洞里)

    : 1916년 행정구역 개편 시, 상서리, 하동리 전역과 덕화동, 상동, 교동, 석동, 남면의 능동 각 부락으로 구성됨.

    • 교동(校洞) : 향교가 있어 붙여진 이름. 옛날 용안군청의 소재지임
    • 성동(城洞, 소리지) : 옛 읍성의 동편에 있어 붙여진 이름
    • 성치(成峙, 성재) : 옛 읍성 밖 고개 옆에 있어 붙여진 이름
  • 덕용리(德龍里)

    : 1916년 행정구역 개편 시, 송천리, 용산리 전역과 덕동, 연동, 남면의 동지리, 입산리 등 각 부락으로 구성됨.

    • 덕용(德龍) : 덕동(텃골)과 용산을 병합해서 붙여진 이름
    • 연동(蓮洞) : 마을에 연못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
    • 용산(龍山) : 마을 뒤 뱀자산이 용의 꼬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 중신리(中新里)

    : 1916년 행정구역 개편 시, 하신리, 용신리의 전 지역과 성동, 중신리, 상신리, 자라리의 일부로 구성됨)

    • 중신(中新) : 조선조에 평택 임(林)씨가 개촌한 마을로 용안의 중심부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 1940년 4개로 나위었음.
    • 상신(上新) : 본래 중신리이었으나, 1940년 중신리를 4개로 나눌 때, 중신의 뒤편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
    • 중화(中和) : 본래 중신리이었으나, 인구증가로 1940년 중신리를 4개로 나눌 때 붙여진 이름
    • 하신(下新) : 본래 중신리이었으나, 인구증가로 1940년 중신리를 4개로 나눌 때 붙여진 이름
  • 창리(昌里)

    : 1916년 행정구역 개편시, 교항리 전지역과 창리, 자라리, 구호리, 상신리, 중신리와 일동면 운교리의 일부로 구성됨.

    • 창리(昌里) : 조선조 때 해주 오(吳)씨가 개촌. 용안현 때에 득성창이 있던 곳이라 창리(創里)라 하였으나 후에 한자 표기를 창리(昌里)로 바꾸었음.
    • 송정(松亭, 송정이) : 1920년 경 각지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마을로 뒷산에 현존하는 삼송정이 있어 붙여진 이름
    • 자라(者羅, 자래고지) : 마을형국이 자라가 엎드린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 교항(橋項, 다리목) : 1914년 낭산천 하류에 운교(雲橋)가 있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
  • 용두리(龍頭里)

    : 1916년 행정구역 개편시, 용두리, 송곡리, 장동, 오가동 전역과 석우리, 현내면 창리 일부로 구성됨.

    • 용두(龍頭, 용두코쟁이) : 용두산의 앞 마을로 지형이 용의 머리와 같고 강이 굽은 곳이라하 여 붙여진 이름.
    • 송곡(松谷) : 100여년 전에 생긴 마을로 마을 뒤 골자기에 송림이 울창했었기에 붙여진 이름
    • 간이(艮二, 간동(艮洞)) : 간동과 이간동을 합친 이름. 이가동은 이씨가 많이 살아 이가동이 라 했었는데 후에 이간동으로 바뀌었음.
  • 법성리(法聖里)

    : 1916년 행정구역 개편시 법성동, 순풍동, 을동, 산양동 전지역과 석우리, 궁지동 일부로 구성됨.

    • 법성(法聖), 순풍(順豊) : 남편 을산에 있는 자명사(自明寺)가 있어 붙여진 이름. 순풍은 순 풍산 아래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으로 해주 오(吳)씨의 세습지이다.
    • 석우(石隅, 돌마루, 돌모루) : 돌마루(돌모루의 음전으로 한자표기는 석우임)는 금강이 그곳 에 부딪쳐 굽어 돌아가는 곳이라 붙여진 이름.
    • 을산(乙山, 을동(乙東), 산양동(山陽洞)) : 을산은 을동과 산양동을 합친 이름. 을동은 조선 조 때 천안 전씨가 개촌. 형태가 새와 같다하여 을산(새산)이라 하였음. 산양동은 산의 남쪽 양지 바른곳이라 붙여진 이름.
  • 석동리(石洞里)

    : 1916년 행정구역 개편시 석동, 궁항리 전역과 궁지동, 실리 일부로 구성됨.

    • 석동(石洞, 돌고지, 독고지(犢顧地)) : 석동은 돌고지의 한자 표기임. 현재는 바위가 엇지만 옛날에는 바위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 독고지는 자명사 뒷산이 어미소 형국이고, 송아지가 어미소를 바라보는 형국이라 헤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음.
    • 부엌(富億) : 조선조때 황씨가 집단 거주한 뒤 붙여진 이름.
    • 궁항(弓項, 활목) : 궁항은 활목의 한자 표기임. 마을이 산등성이를 따라 활과 같이 굽었기에 붙여진 이름.
  • 난포리(蘭浦里)

    : 1916년 행정구역 개편시 난포리, 은입산리 전역과 신리, 현내면 교동리, 상동리, 화동리, 함열군 북이면 법성리의 일부로 구성됨.

    • 신은(新銀), 난포(蘭浦, 난포장터) : 신은은 신리와 은입산리가 합ㅎ진 이름이며 지금은 한마을임. 난포는 금강변의 포구로 갈대가 많이 난 포구라서 붙여진 이름. 난포장터는 시장이 있어 붙여진 이름.
  • 송산리(松山里)

    : 1916년 행정구역 개편시, 송산리, 화정리, 능동, 안대동과 현내면 덕동, 이동면 연화동, 돈다리, 일동면 운교리 일부로서 구성됨

    • 송산(松山, 앞곰굴) : 옛날 동, 서, 북쪽이 솔밭으로 쌓여 있어 붙여진 이름.
    • 웅동(熊洞, 뒷곰굴) : 웅동은 곰굴의 한자 표기이며, 송산 마을의 뒷마을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
  • 동지산리(冬至山里)

    : 1916년 행정구역 개편시, 동지산리, 송산리, 입산리, 안대동과 현내면 덕동의 일부로서 구성됨.

    • 동지산(冬至山, 동지매) 신흥리(新興里) : 함열의 동지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 신흥리는 100여년전에 생긴 마을로 동지산에서 나누어져 새로 생겨난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
    • 입산(笠入, 삿갓재) : 입산은 삿갓재의 한자 표기임, 동리 북편의 산 모양이 삿갓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
    • 안대(案大, 案大,洞) : 동지산 남쪽 안대(案對가 安大로 바뀜)편에 있어 붙여진 이름
  • 칠목리(七牧里)

    : 1916년 행정구역 개편시 학동의 전역과 칠목동, 화정리, 안대동, 이동면 연화동, 함열군 동이면 중정리 일부로 구성됨

    • 칠목(七牧) : 길목(질목)이 칠목으로, 칠목(柒木)이 칠목으로 변했다는 설이 있으나 단정할 수 없음
    • 학동(鶴洞) : 부락 지형이 학과 같아서, 학이 많이 깃 들어서, 서당이 있어서 학당(學堂)이라 했는데 학동으로 변했다는 설 등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음
    • 화정(花亭) : 옛날 마을 뒤에 꽃봉우리와 같은 수령 300년 이상의 나무가 붙여진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