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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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동
- 팔봉 : '원팔봉'은 본시 면명인 팔봉과 구분하기 위한 이름. '팔봉'은 팔봉산 밑의 마을이므로 지은 이름
- 당산 : '당산'은 동국여지승람이나 구 익산읍지에 산 이름으로서의 당산이 보인다. 그러나 그 당산은 석왕동 석치 뒷산인 현대 통칭 '지네산'을 당산이라 했으니 지금의 당산 마을과는 4백미터나 떨어져 있다. 따라서 지금의 당산 마을이 예전에는 지네산 밑에서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것은 지리상으로 보아도 그렇다.
- 장목 : 1920년 대까지는 장목과 점촌으로 구분되었으나 지금은 한마을이다. '장목'은 지형이 긴 목으로 되어있으니 그래서 생긴 이름이고 점촌은 지금도 도자기를 굽고 있다.
- 화봉 : '장목'마을 옆에 새로 생긴 화초 재배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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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동
1914년 서성리, 수랑동, 하남리의 전 지역과 구기리, 신남리, 덕천리, 두촌면의 금죽동과 창평리, 군내면의 연동과 용동의 각 일부 지역으로 덕기리가 구성되었는데 1983년 팔봉면 전체가 이리시에 편입될 때 이리시 행정동의 하나인 팔봉동 중에 속한 법정동 이름으로 덕기동이라 했다. 동명은 1914년 덕천리와 구기리에서 한자씩 취한 것. '덕기동'을 모두 싸잡아 '남산'이라 한다.
- 하남ㆍ꽃밭골ㆍ금죽동 : 덕기동을 전에는 '열두남산'이라 하여 동 중에 12마을이 있었다 하는데 '하남'은 남산의 아랫편이라는 뜻에서 생긴 명칭. '남산'은 옛날 금마군(익산군)의 행정 중심지였던 금마에서 남쪽 산이라는 뜻에서 부른 이름. '금죽동'에는 전에 금죽사가 있었다.
- 수랑 : '수랑골'의 서남편 들에는 수렁(수랑)이 많아서 생긴 이름.
- 신덕 : 신덕은 왜정 때 신남과 딕천를 합친 이름.
- 구기 : '남산'에서 옛날의 행정 중심지인 금마에 가장 가까운 마을로 고대에는 번성했던 곳이므로 일컫던 명칭이다.
- 서성 : 신덕 마을에서 서편 재에 있다 하여 '섯재→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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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왕동
1914년 신왕리, 상황리의 전 지역과 하왕리, 석치리의 각 일부 지역을 합하여 석왕리라하여 팔봉면의 한 리가 되었는데 1983년 팔봉면 전체가 이리시에 편입될 때 법정동 이름으로 '석왕동'이라 했다. 석왕동은 석치와 왕묘에서 한자씩 따 붙인 이름이다.
- 상왕 : '상왕'은 '왕묘'를 상ㆍ하로 나눈 명칭이고, '왕묘'는 상황 동쪽 야산 중에 백제 무왕과 그 왕후 선화공주의 능이라고 추측하는 쌍릉이 있는데 그 왕묘 옆의 마을이므로 일컫던 이름이다. 전에는 땅이름이나 사람 이름에 '임금 왕'자는 쓰지 못했으므로 '旺'자로 썼다.
- 하왕 : 상황 참조.
- 신왕 : '상왕, 하왕'옆에 전에 새로 생긴 마을이므로 '신왕'이라고 함.
- 석치 : '석치'는 '돌고개'의 한문자 표기고, 돌고개는 팔봉동 당산 마을에서 돌고개로 넘어가는 고개가 돌로 되어 있어 생긴 이름. 직므은 돌이 거의 풍화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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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기동
1914년 석교리, 은원리, 신기, 상두리의 전 지역과 내두리, 두천면의 중왕리와 하왕리의 각 일부 지역을 합하여 은기리라 하였는데 1983년 팔봉면 전체가 이리시에 편입될 때 법정동명으로 은기동이라 했다. 동명은 전에 은원과 신기에서 취한 것.
- 중왕 : 중왕은 석왕동의 상왕, 하왕, 신왕과 가까운 곳으로 본 이름 '왕묘'에서 구분된 것. '새메'는 석교와 하왕, 신왕의 '새에 있는 뫼'라는 뜻.
- 석교 : '석교'는 전에 그 마을 위로 금마 황등 간의 큰 도로가 있었고 망동천을 건너는 돌다리가 있어 석교 또는 '거리다리'라 했다. 그 돌다리는 뒤에 내두 마을과 석치 마을 중간의 망동천 다리로 옮겨졌다.
- 은원 : 은원은 마을이 깊숙히 숨겨져 있고, 또 샘물이 좋기로 유명하니 그래서 '은천'이고 '원'은 의병장 이보의 사당이 있고 또 그의 거주지이므로 그와 관계된 이름.
- 신기 : 신기는 은기동에 가장 뒤에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므로 붙은 이름.
- 상두 : 본 이름은 '두내'인데 앞 망동천을 전에는 두천이라고 했으므로 그에서 취해진 '두천'을 상두내두로 구분한 이름. 망동천이 1914년 이전에는 두천면과 지석면의 경계였음.
- 내두 : 상두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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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제동
1914년 용연리, 용지리, 신촌, 조산리의 전 지역과 이제리의 일부를 합하여 용지와 이제에서 한자씩 따서 '용제리'라 하였는데 1983년 팔봉면 전체가 이리시에 편입됨으로써 이리시 법정동명으로 용제동이라 했다.
- 용지 : 아랫마을 용연과 인접한 마을로 명칭의 유래가 같다.
- 용연 : 앞 들에 있었던 못에서 용이 올랐다는 전설에서 이루어진 명칭이라 한다. '중촌'은 용지, 신촌, 이제 등의 가운데에 위치했기에 일컫던 이름.
- 이제 : 앞 들에 옛날 못이 있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한데 그 못 이름이 '배못'이었으리라 한다.
- 신촌 : 신촌은 이루어진 연대가 오래지 않으니 그로써 생긴 이름.
- 조산 : 조산도 이루어진 연대가 오래지 않은데 마을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그 땅이 조씨의 임야였으므로 '조산'이라고 한 임야 일므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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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암동
1914년 석암리, 광동, 추산리의 전 지역과 망궁동, 이제리 또 춘포면의 삼포리 각 일부를 합하여 석암리라 하였는데 1983년 팔봉면 전체가 이리시에 편입될 때 이리시 법정동명으로 석암동이 되었다.
- 관동 : '도롱골'은 원식암, 추산 등 마을에서 돌아서 있는 마을이라 해서 '도람골→도롱골'이라고 한다.
- 추산 : 본 이름은 '밀메'인데 원석암이나 관동에서 뫼 밑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밑뫼→밀메'다. '너러지'는 마을 터로부터 앞 평야로 지형이 늘어진 곳이기에 '늘어지→널어지'다.
- 원석암 : 뒷산 일부가 바위로 되어 있어 '돌바우'라 했고 '원석암'은 리의 이름과 구분하기 위하여 '원을 붙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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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동
전에는 북일면 신흥리였는데 1974년 북일면 전체가 이리시에 편입되어 신흥동이 되었다가 1998년 팔봉동과 통합되었다.
- 오동ㆍ터진목ㆍ약수 : '오동'은 '오동정이'가 본 이름인데 1940년대까지도 오동나무가 많고 정자를 이루고 있어 생긴 이름이다. 오동나무가 많던 곳은 지금은 이리 공업단지로 들어갔다. '터진목'은 양편 구릉 사이로 동남간에서 서북간으로 터져 있어 일컫던 이름. '약수'는 '새실'서북쪽에 약수터가 있다.
- 신흥 : '원신흥'은 신흥리 때 리의 이름과 마을이름을 구분하기 위하여 '신흥'에 '원'을 붙인 것.
- 초고 : '초곡'은 본 이름 '새실'의 한문자 표기고 '황새골'은 전에 황새가 많이 서식해서 생긴 이름이다. 새실이 곧 황새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