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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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송동
1914년 작천리, 망산리, 부평리, 송정리의 전 지역과 팔봉리, 석치리, 궁동, 어곳리의 각 일부 지역으로 구성되었다. 리의 이름은 부송과 송정에서 한자씩 취한 것. 1983년 팔봉면 전체가 이리시에 편입됨으로써 이리시 법정동명으로 '부송동'이라 하였다.
- 망산 : 망산은 들 건너 여러 마을에서 외따로 바라보이는 마을이므로 '바라뫼'라 부른 것을 한문자로 '망산'이라 썼다.
- 부평ㆍ기때배기 : '느릇'은 옆 어양동 '어곳' 참조. '기때배기'는 새부측량 때 삼각점에 깃대를 꽂았기로 생긴 이름.
- 송정 : '송정'은 소나무 정자가 있어 생긴 이름.
- 작천 : 앞에 '까치샘'이라는 샘이 있어 생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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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족동
1914년 상정리, 하정리, 원봉리, 산정리의 전 지역과 내두 일부 지역으로 구성됨. 1983년 팔봉면 전 지역이 이리시에 편입됨으로써 이리시 법정동명으로 '정족동'이 되었다.
- 원봉 : 인접한 금마면 삼봉리와 구분된 이름.
- 상정 : 상정은 소빠리를 상ㆍ하로 구분한 이름. 상정 뒷산에서 보면 세 골짜리고 뻗은 좁은 들이 옛날 솥의 발처럼 생겼다.
- 하정 : 상정 참조.
- 산정ㆍ잿등 : 산정은 서편 마을 임내가 번창했을 때 임내의 산정사이 구릉에 산정을 지었기로 임내에서 '산정너머'라 부른 데서 생긴 이름. '잿등'은 산정 북편 팔봉 황등선 도로가 된 구릉 지대로 '뒷주막'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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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동
1914년 신림리, 임내리, 오상리, 몽함리의 전 지역으로 구성되어 '임내'와 '오상'에서 한자씩 따서 임상리라 했는데 1983년 팔봉면 전 지역이 이리시에 편입됨으로써 이리시의 법정동이름으로 '임상동'이라 했다.
- 신림 : '신림'은 오래된 마을이지만 당시에는 임내에서 갈려간 새 마을이었으므로 붙인 이름이고, '아랫말'도 임내의 아랫마을이다.
- 임내 : 전에는 숲 속에 쌓여있어 수안(숲의 옛말은 '수')이라 했다.
- 오상 : 오상은 풍수설에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 동사 : 1940년대까지도 3가호 뿐이었는데 요교제 간척이후 인가가 늘어 마을이 형성되었다.
- 몽함ㆍ양촌대 : '몽함리'는 마을 지형이 앞뒤의 들 사이로 길게 빠진 구릉으로 꿴 꼬치와 같으므로 '뀜고지→꿈고지→몽함'인데 '관'자를 국음으로는 '곶'으로 읽는 외에 '환'이나 '곤'으로도 읽어 '몽환리→몽함리'가 되었다. '양촌대'는 익산 구지에 "고려 말에 권양촌이 귀양와서 정자를 짓고 살던 곳"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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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동
1914년 진자리, 반월리, 신성리, 율촌면의 내ㆍ외화리의 전 지역과 사제면의 궁교리 일부로 구성되었다. 월성동은 '반월'과 '신성'에서 한자씩 취한 것. 1983년 팔봉면 전 지역이 이리시에 편입됨으로써 이리시의 법정동 이름으로 '월성동'이라고 했다.
- 진자 : '진자'는 본 이름 '개금말'의 한문자 표기. 임야 속에 홀로 있는 마을로 전에는 주위에 개금이 많았다 한다.
- 뒷말 : 임상동 임내의 뒤쪽에 생긴 마을이므로 임내 마을에서 '뒷말'이라 했다.
- 반월ㆍ신정 : 반월리 서편 들 이름이 '쪽다리골'인데 반월리가 전에는 쪽다리골 편에도 인가가 있어 그로써 생긴 일므이다. 달의 옛말은 '다리'이니 '쪽다리→반월'이다. '신정'은 지금은 반월리에 속했지만 전에는 반월리보다 먼저 생겼고 더 컸다.
- 내화ㆍ해바라기 농장 : 본 이름 '고잔'을 '안ㆍ밖'으로 나눈 이름이다. '고잔'은 그 지형이 남북 들 가운데로 쭉 빠진 '곶'으로 되어 있고 마을이 그 '곶'의 안쪽에 있어 '곶이안'이라 하던 것이 '곶잔'으로 줄어 조선 중기에는 '화배'로 표기되고, 내ㆍ외화로 구분했는데 '花'가 '化'로 바뀌었다. '해바라기 농장'은 카톨릭 교단에서 경영하는 농장과 수녀원
- 외화ㆍ뱃나들이ㆍ원종장 : 뱃나들이는 요교제가 생겨 팔봉면과 황등면 사이를 나룻배로 왕래함으로써 생긴 이름. '원종장'은 전북특별자치도 원종장이다.
- 신화 : 1935년 요교제가 논으로 간척됨으로써 새로 생긴 마을로 내화마을 옆에 새로 생겼으므로 '신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