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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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도리
1914년 옥동, 옥전리, 옥후리, 상대리, 하대리, 구정리, 한정리, 누동, 교동, 신동의 전 지역과 원두리, 건지리, 죽림리, 두천면의 구기리, 신남리, 제석면의 탑리, 부상천, 황동 등 각 일부로 구성되었다. 이 이름은 마한의 옛도읍지라 하여 '고도'에 동ㆍ서의 구분으로 동고도리라 했다.
- 황동 : '황동'은 등성이 너머 황각동과 관련된 이름이라 한다. -신용리의 '황각' 참조-
- 신촌ㆍ대정ㆍ분통골 : '신촌'은 당시에는 새로 생긴 마울이라 해서 생긴이름. '대정'에는 큰 샘이 있었다. '분통골'은 그전에 그곳에서 분토가 나오는 곳이 있어 생긴 이름. '분토골 -> 분통골'.
- 교동 : 향교가 있는 마을.
- 천마 1동 : 1974년 군 부대명인 천마부대의 영외 거주자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이루어진 마을.
- 천마 2동 : 1동 참조
- 누동ㆍ한정리 : 누동에는 전에 청심루가 있었고, 누각 훈지당도 누동에 있었다. '한정'은 익산 구지에 "한정은 군 아사의 동편 백보에 있는데 그 샘물이 겨울에는 다숩고 여름에는 차며 수토로 생긴 병이 잘 낫는다"했다.
- 금동 : 누동에서 분리된 마을이다. '훈지'와 관련된 이름이라 한다.
- 구아 : 옛날 치소의 아사가 있던 곳이라 해서 근래 '구정'마을과 분리하면서 붙인 이름.
- 구정 : '구아' 참조. '건지리'는 건지산 밑이라 해서 생긴 이름.
- 이화동 : 배나무가 많아서 생긴 이름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 옥동ㆍ비성골ㆍ사정거리 : '옥동, 옥두말'은 치소 때 옥이 있던 뒤의 마을이었으므로 옥후리(獄後里)라 했는데 '옥'의 한문자가 '옥(玉)'으로 바뀌어졌다. '비성골'은 전에 객사 앞이었는데 여러 사람들의 공적비와 선정비가 많이 세워져 있었기로 '비선골 -> 비성골'. '사정거리'는 전에 활쏘기 연습장이며 시합장인 사정이 있었던 거리다.
- 옥천동 : 옥동에서 근래 갈려 나온 마을로 옥룡천 가에 위치했으므로 '옥동'의 '옥'에 '내 천(川)'자를 붙인 것.
- 중앙동ㆍ한다리목 : 근래 이루어진 마을로 금마면의 중앙에 위치하였다 하여 붙인 이름. '한다리목'은 '큰다리목'이라는 말.
- 천마동 : 천마부대의 하사관들이 사는 곳.
- 상대 : 장터거리로 대장 마을 윗쪽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
- 대장 : 큰 장터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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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도리
1914년 남정리, 원촌, 서변리(서편), 상제리, 하제리, 저전리의 전 지역과 용동, 연동, 원두리, 건지리, 죽림리, 두천면의 구기리 각 일부로 구성되었다. 이 이름은 '동고도리'와 위치에 따라 동ㆍ서로 구분한것.
- 상재ㆍ서편말ㆍ방죽안ㆍ행정 : '상제'는 전에 있었던 증벽지 안쪽. '행정'은 소세양의 퇴휴당이 있던 곳에 큰 은행나무가 있어 이루어진 이름이라는 설과, 옛날 향정 뒷산에 토성이 있었고 그 곳에 군대가 머물러 있던 정의 이름이 '행정'이라는 설(백제 때는 군대가 머무르던 '停'을 '亭'으로 썼다)이 있다.
- 서계ㆍ하제ㆍ도토성이 : '서계'는 옥룡천의 서쪽에 있으므로 일컫던 이름. '하제'는 '상제'와 상하로 구분된 이름. '도토성이'는 옛 문헌에 '堵土城'으로 기록되었는데 향정 마을 뒷산에 지금도 토성의 자취가 있으니 '都土城'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또 '도'는 우리 지명에 있어 터라는 말로 많이 쓰였으니 '터의 토성', 즉 행정지에 있는 토성이라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 원촌 : 옛날부터 있던 큰 마을이므로 일컫는 이름(본촌)
- 연동ㆍ산제당 : 연동은 현재의 연동제에 연이 가득 차있는 옆 마을. '산제당'은 전에 산제당이 있었다. '지아골'은 전에 기와를 굽던 곳.
- 용정 : 마동의 어머니가 못의 용과 교합해서 마동을 낳았다는 전설이 있는곳과 가까운 마을이므로 붙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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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리
1914년 구룡리, 독정리, 침령리, 황각동의 전 지역과 구곡리, 신정리의 일부로 구성됨. 리의 이름은 신성과 구룡에서 한자씩 따서 지은 것.
- 황각 : 익산에서 제일 명승지라 이르는 경치 좋은 곳으로 익산 구지에도 "사시 풍경이 입과 붓으로 다 형용할 수 없어 시인 묵객이 끊이지 않는다" 하였다. 황각동은 중국에서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황학루에서 취한 명칭이다.
- 도천ㆍ갓점ㆍ감나무골 : 도천은 전에 마을 가운데에 서울 방면으로 통하는 큰 길이 있었고 옆에 내가 있는데 비올 때가 아니면 내 바닥이 길이 되는 일이 많았으므로 '길내'이라는 설도 있으나 '도내골'이 본 이름이르모 '도내'를 '道川'으로 쓴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지명에 '터'를 '더' 또는 '도'라 한 곳이 퍽 많으니 '텃내골'의 뜻인 '도내골'로 보는 것이 가합할 것이다.
- 구룡ㆍ독점ㆍ국골ㆍ당내갈ㆍ범정이 : '구룡'은 국골의 뒤 바위에 언제 누가 생격ㅆ는지는 모르나 '구룡동천'이라고 새겨져 있어 그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나 그 지형이 구렁으로 되어 있으니 '구렁'을 한문자로 표기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독징이, 독점'은 전에 도자기를 굽던 곳이다. 독을 짓는다하여 '독진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우리나라에 수백군데 있다. '국골'은 전에 구곡으로 썼는데 그 지형이 굽이굽이 굽은 곳이니 '굽골->국골'. '당내갈'은 당집이 있던 고? 내 옆이기에 생긴 이름. '범정이'는 범이 내려와서 어쩌구저꺼구하나 및을 수 없는 일.
- 종평 : 종평은 마릿들(머릿들의 옛말)의 한문자 표기다. 머리들은 뒷들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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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북리
1914년 내산동, 외산동의 전 지역과 여산군 서이면의 내산리의 일부로 구성되었다.
- 산북ㆍ내산ㆍ외산 : '산북'은 1972년 '내산'과 '외산'을 합친 분리명이 되었다. '내산동'은 미륵산과 용화산 사이의 산 속에 위치했기에 생긴 이름이고, 외산은 내산과 구분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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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순리
1914년 용순리, 신원리, 동변리, 망동, 양촌의 전 지역과 서변리, 군내면의 신정리, 오자동, 두천면의 중왕리의 각 일부로써 구성되었다.
- 동편·상정말 : 미륵산의 남쪽 미륵사진 안으로 흐르는 내를 경계로 그 동편에 위치하였으므로 일컫는 이름이다. 한문자로는 '東邊'으로 쓰나 '동편'으로 부른다.
- 서편·버들골·바랑골 : 버들골은 예전 읍지에도 '양촌'으로 썼으니 버들이 많아서 생긴 이름일것.
'바랑골'은 동족 용순리 등에서 들 건너로 바라보이는 곳이니 '바람골→ 바랑골→ 望洞'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망산,망동' 등이 거의 그런것으로 보아 짐작된다. - 용순(용순이)·매모통이·안뜸 : 용순이는 마을 산이 용과 같고 마을이 용의 입과 같은 속에 위치하고 있어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매모통이'는 산모퉁이라는 말.
'안뜸'은 원용순의 안뜸 - 신정(새터)·오작골(오작동) : '신정'의 본 이름은 '새터'고 '신정'은 그곳에 좋은샘이 있어 샘과 관계있는 이름이다. 오작골은 전에 소씨 재각 뒤쪽에 오죽이 많아서 '오죽골→ 오작골'이라고 한다.
- 신기(오목새터)·신서원·온통거리 : '신정'이 '새터'이므로 그와 구분된 이름으로 우묵한 곳이라 하여 '오목새터'라고 했다.
'신서원'은 노상리의 구서원과 구분한 명칭으로 김장생을 모신 화산서원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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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양리
1914년 기양리, 마전리, 노상리, 향산리, 미륵면이 서변리, 구문천면이 기상리의 일부로써 구성됨
리명 기양리는 이내의 대표적인 마을에서 취한 것이지만 본시는 기준성의 남쪽이니가 기양이라 했을 것이다.- 노상리·탑셍이·구서원·물탕골·쪽지밭골·박골 : '노상리'는 금마 황등선이 예전부터 큰길이었는데 그 길 위의 마을이므로 생긴 이름이다.
'탑셍이'는 미륵탑이 서있는 곳이므로 '탑선이→ 탑셍이'
'구서원'은 신서원과 구분된 명칭. 이공수를 모신 화암서원을 일컬음.
'물탕골'에는 약수가 나는 물탕이있다.
'박골'은 미륵사의 담 밖의 골이란 뜻.
'쪽지밭골'은 다랑다랑한 밭이나 또는 넓은 밭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짓는다는 뜻의 '쪽지밭'이다. - 기양(기양리)·구시울 : 기양은 이명 참조
'구시울'은 '구시골'이라는 말인데 '구시'이 끝소리 '시'가 'ㅣ'로 끝나므로 그 'ㅣ'밑에서 골→ 굴→ 울'이 된것이고 그 지형이 구시(구유)처럼 생겨 이루어진 이름 - 마전(삼바지)·걸카먀둘 : '마전'근처의 논이 전에는 모두 밭이었다는데 그 밭에 삼을 많이 심었돈 둣하다.
- 향산(여꾸지)·아가골 : 여꾸지는 옆 마을인 서쪽 사람들이 옆마을이라 하여 '옆고지'라 하던 것이 '여꾸지'로 변한 말이다.
'아가골'은 '앞 가 골'의 변한 알인지?
- 노상리·탑셍이·구서원·물탕골·쪽지밭골·박골 : '노상리'는 금마 황등선이 예전부터 큰길이었는데 그 길 위의 마을이므로 생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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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산리
1914년 갈산리, 각동, 지석면의 삼봉리 등의 전 지역으로 이루어졌다.
- 갈산(갈메) : 옆 산봉우리가 갈모처럼 원추형으로 생겨 '갈모봉'이라 부른데서 마을 이름이 생겼다. 옛문헌에는 산 이름을 삼정산으로 기록한 곳도 있다.
- 각봉·각동·삼봉 : '각봉'은 1972년에 각동과 삼봉을 합쳐 지은 분리명 이고, '각동'은 본시 외따로 몇 호씩 떨어져 있어 생긴 이름이다.
'삼봉'은 등너머 마을 원봉에서 갈린 마을로 전에는 산봉으로도 기록되었으나 본 이름이 삼봉이고 산봉우리를 셋으로 볼 수도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