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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소개

춘포면

  • 춘포리

    1914년 신월리, 고잔리, 신평리, 신룡리의 모든 지역과 간리, 회화리, 김제군 회포면 유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대장촌리라 이름지어 익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춘포면에 편입함. '대장촌'을 '춘포리'로 바꾼 것은 근래임

    • 회화ㆍ윗새터 : 회화는 전에 강과 길의 돌굽이에 위치한 곳이여서 돌아가는 곳의 뜻인 '돌고지'라 하고 '回花'으로 썼는데 뒤에 '花'가 '化'로 바뀌었다. '윗새터'는 대장촌(춘포리)의 윗마을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해서 일컫던 이름.
    • 중촌 : 대장촌(춘포리)의 윗마을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해서 일컫던 이름.
    • 신촌 : 전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해서 붙인 이름.
    • 역전 : 춘포 역전
    • 구담 : 지형이 거북과 같다해서 전에는 '구담'이라 했는데 '九'자로 바꿔졌다. '구담'의 '담'은 '뜸'의 변한 말이니 '거북뜸'이라는 말.
    • 신평ㆍ토다리 : 신평은 새로 생긴 들 가운데의 마을이라 해서 붙은 이름. '토다리'는 1960년대까지도 흙으로 다리 위를 덮은 토다리가 있었다.
    • 화신ㆍ하신ㆍ강흥 : 1973년 07월 이전에는 김제군 백구면에 속했었는데 당시는 '하신'이라 했다. 아랫편의 새터라는 뜻.
  • 덕실리

    1914년 덕실리, 시전리, 신동의 전 지역과 회화리, 신호동의 각 일부로 구성하여 이내 중심지의 이름으로써 이 이름을 삼았다.

    • 덕실ㆍ아랫것태ㆍ웃것태 : '덕실'의 '덕'은 옛말로 '터'라는 말이고 '실'은 '골'이라는 말이니 '텃골'이라는 말이다. '원덕실'의 '원'은 이 이름과 구분도 하려니와 '덕동'도 전에는 덕실이라 했으므로 그와도 구분한 이름. '아랫것,웃것'의 '것'은 '곁'즉 옆이나 그에 딸린 곳이라는 말.
    • 덕동ㆍ뒷뜸ㆍ앞뜸ㆍ뒷산개 : '덕동'은 이루어진 시기가 오래지 않다. 덕실과 구분하기 위한 이름이다. '뒷뜸,앞뜸'은 덕동의 뒤와 앞이고 '뒷산개'의 '개'는 접미어'께'의 변음이니 '뒷산께'라는 말이다.
    • 시전ㆍ뒷뜸ㆍ앞뜸 : 시전은 전에 가시밭이었으므로 '섶밭→시전'이다. '섶'은 잎나무나 땔감의 뜻.
  • 삼포리

    1914년 삼포리만으로 독립됨.
    삼포는 전에 삼면이 개였기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세 뜸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므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 오산리

    1914년 오산리, 내동, 문덕리의 전 지역과 심암리, 신기, 광동, 춘포면의 반도리 등의 일부로 구성됨.

    • 오산 : 전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외딴 산이기에 '외산→오산'이라고도 하나 알 수 없다. 원오산은 마을이름과 구별하기 위한 것.
    • 문덕ㆍ분통골 : 문덕은 전에 문씨가 많이 살아서 일컫던 명칭이다. '문덕'의 '덕'은 '터'의 옛말이니 문씨터라는 말이다. '분통골'은 그 지형이 예전의 분통처럼 생겼다.
    • 광동 : 광동은 본 이름 '넉걸'의 한문자 표기고, 넉걸은 넓은 들 가운데에 위치한 마을로 '넓골'에서 전음된 것. '골'이 '걸'이 된 것은 모음조화 현상이다.
  • 신동리

    1914년 신동, 노적리, 원형리의 전 지역과 수양동, 심암리의 일부로 구성됨. 이 이름은 이 내의 중심지에서 취한 것.

    • 신동 : '신동'은 본 이름 '미둥굴'의 한문자 표기고, '미동굴'은 북편들의 생수가 좋아 가뭄이 심해도 믿고 농사를 짓는 곳이므로 '믿음골→미둥굴'. '골'이 '굴'이 된 것은 모음조화 현상. '원신동'은 신동과 구분하기 위한 것.
    • 원정 : '신동'참조.
    • 심암 : 밭가운데에 미륵산에서 가져왔다는 전설이 붙은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 무엇이든 빌면 이루어진다 하여 '마음바위→심암'이라 한다.
    • 노적 : 집집마다 곡식이나 벼를 한데에 쌓아두는 노적가리가 있어 생긴 이름이라 하나 혹 관곡의 노적소였는지?
  • 창평리

    1914년 엽동, 갈전리의 전 지역과 창평리, 금죽동, 수양동, 두천면의 덕성리 일부로 구성되었다. 이 이름은 이 내의 중심지에서 취한 것.

    • 창평 : 창평은 옛날 관청 창고가 있던 곳이다. 전에 행정중심지였던 금마에 가까운 곳으로 익산 구읍지에 "옛 도읍 때 부고가 있던 곳"이라고만 하였으니 조선 시대에도 언제 부고가 있었는지 확실히 몰랐던 모양이나, 창고의 주춧돌은 일정 때까지도 남아 있었다.
    • 엽동 : '창평'이 옛날부터 큰 마을이었으므로 창평에서 옆의 동리라 하여 '옆골→엽동'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으나, 일설에는 금마가 도읍지였을때 사냥하던 곳으로 엽동이라 했다고도 한다.
    • 갈전 : 본 이름 '가랏'을 '갈전'으로 한문자 표기한 것. '가랏'은 '갈밭'의 옛말이다. '갈받'이 'ㄹ'밑에서 '받'이 '앗'으로 발음된 '갈앗→가랏'이다. '갈'은 갈대다.
  • 천서리

    1914년 안천리, 상다리, 하다리의 전 지역과 신기, 수양동의 각 일부로 구성되었다. 이 명은 익산천의 서편이라 해서 붙인 것.

    • 안수ㆍ안천ㆍ수양 : '안수'는 1972년 안천과 수양을 합친 분리명이다. '안천'은 전에는 '安川'으로 썼고 그 유래에 대하여 옥룡천(익산천)의 안쪽이므로 생긴 명칭이라고 했고, 또 마을 뒤 귀명산에 평사낙안혈이 있다는 풍수설에서 생긴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수양'은 수양버들이 많아서 생긴 이름.
    • 담월ㆍ상다ㆍ하다 : '다멀'은 전에 마을 앞에 '왕달배미'라는 반달처럼 생긴 큰 논이 있어 달배미 마을이라는 뜻으로 '달말'이라 하던것이 '다멀'이 되었다고 한다.
  • 천동리

    1914년 평영리, 삼리의 전 지역과 학연리 일부로 구성되었다. 이 이름은 익산천의 동쪽이므로 천동이라 했다.

    • 학연 : 전에 마을 앞에 있던 자연못인 '학못'에서 취한 이름. 익산 구지에 기록된 '학지'가 바로 학연이다.
    • 초삼 : 초삼은 본 이름 '푸새미'의 한문자 표기고, 푸새미는 샘의 이름에서 이루어진 명칭이라 한다. 그러면 '푸새미'는 무슨 뜻일까. 음료수로는 적당치 않고 허드레로나 쓰는 '풋샘'이 있었는지?
    • 평장 : '평장'은 넓은 들이나 평평한 곳. 또 들에 농막을 두던 예전에 작업을 하는 평마당(평판)을 '평장'으로 쓴 것이 아닐까? 하여튼 그런 지세에 위치한 마을이다.
  • 쌍정리

    1914년 쌍정리, 입석리, 반도리, 전주군 우서면 중신리와 쌍북리의 일부로 구성됨

    • 쌍정ㆍ안동네 : 전에는 동리 양편에 정자나무가 쌍으로 서 있어 이루어진 이름이다.
    • 입석ㆍ윗선들ㆍ아랫선들 : '입석'은 본 이름 '선돌'의 한문자 표기다. 선돌이 지금도 서 있다. 예전 흑석부곡에 들어가는 입구였다고 하나 확실한 증거가 없다.
  • 인수리

    1914년 궁월리, 화평리의 전 지역과 반도리, 문종리, 두촌면의 광동과 전주군 우서면의 신평리 각 일부로써 구성되었다.

    • 문종 : '문종'이라는 이름은 혹시 번드리 마을에 들어가는 윗쪽이라는 뜻의 문마루라 해서 '문마루→문종'인지?
    • 궁월 : 전에 마을 뒷길이 활이나 반달처럼 생겼다해서 이루어진 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달은 고대에 '다리'라고 했고 또 '다리'는 '들'의 고어이므로 활처럼 굽은 들이기에 '활다리→궁월'일 가능성이 크다.
    • 반도 : 들이나 들과 연결된 경사지나 황무지를 '번들' 또는 '번드리'라고 했는데 번드리도 그러한 지대이기에 생긴 명칭일 것이다. 그리고 번드리를 '반도리'라고도 했기에 '반도'로 표기하였을 것이다.
    • 화평ㆍ북아시 : '봉개'는 봉개산에서 취한 이름이라기보다 포구 이름에서 산이름과 마을 이름이 이루어졌다고 여겨진다. 예전에는 그곳이 포구였고, '춘포'라는 이름이 생긴 것도 '봄개→봄개'인데 그 '봄개'가 바로 '봉개'다. '북아시'는 북쪽이라는 말.
    • 신화ㆍ골뜸 : '신화'는 '화평'에서 갈려나온 새 마을이므로 붙인 이름.
  • 용연리

    1914년 판문리, 사천리의 전 지역과 신호동, 장연리, 김제군 회포면 신기리와 신덕리, 전주군 우서면의 해전리와 신기리 각 일부로써 구성됨.

    • 장연 : 익산읍지에 "장연제는 주위가 13.687척, 깊이가 11척이라"고 한 그 장연제의 옆 마을이다. 따라서 못 이름에서 마을 이름이 생겼다. 당시의 지도에 의하면 못의 동쪽 끝이 당시의 입석교와 흑석제 밑까지 뻗친 긴 못이었으므로 장연이라고 했다.
    • 사천ㆍ장구동 : 사천은 만경강 유역으로 모래와 자갈이 많던 곳에 마을이 이루어짐으로써 생긴 이름이다. '모래내→사천'
    • 판문 : '눌문이'는 마을이 처음 형성될 때 8가호가 살았는데 집집마다 판자(널빤지-늘)로 대문을 만들어 달았기에 생긴 이름이라 한다.
    • 신호ㆍ김계뜸 : '하신'에서 갈라진 마을이며 1940년대까지 마을 뒤에 못이 있었는데 못이 메워지고 그 옆에 새로 생긴 마을이어서 생긴 이름. '김계뜸'은 전에는 김제군에 속한 마을이므로 일컫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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