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기면
-
간촌리
1914년 간촌, 상표리, 중리, 석라리의 전 지역과 하표리, 원촌, 구문천면의 사오랑리 각 일부로써 구성됨.
- 간석ㆍ소간촌ㆍ석라ㆍ공소골ㆍ관동 : '간석'은 1972년 소간촌과 석라를 합쳐 지은 분리명. '소간촌'은 '원간촌'과 구분한 이름.
- 간중ㆍ간촌ㆍ중리 : '간중'은 1972년 간촌과 중리를 합쳐 지은 분리명. '간촌'은 본 이름 '샛말'의 한문자 표기고 '샛말'은 중리와 하표 사이에 위치하여 일컫던 이름. '중리'도 간촌을 기준으로 해서 생긴 이름. '박그메'는 바깥쪽이라는 말.
- 하표ㆍ신기촌 : '하표'는 상표의 아래편 마을이라 하여 '아래곁→하표'다. '상리'는 '상표'와 더불어 일컫던 이름. '신기촌'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일컫던 이름.
- 상표 : '하표'의 윗쪽에 있으므로 '윗겻→상표'
- 상정 : 1985년에 한 분리로 신설했다.
- 원촌 : 공판장이 있는 자리가 옛날의 원 집인 사교원의 터다. '원이마'는 '원리'에 다시 '마을'이 덧붙은 '원리말'을 한문자로 표기한 것.
-
서두리
1914년 서두리, 상갈리, 하갈리, 화초동, 익함리의 전 지역과 만대리, 중리, 하표리, 함열군 동이면 상마리 각 일부로 구성되었다.
- 서두ㆍ윗뜸ㆍ큰뜸ㆍ아래뜸ㆍ작은뜸ㆍ양뜸ㆍ참나무백이ㆍ화초 : '서두'는 간촌이나 상리의 서쪽에 속하므로 '섯말→서양→서두'설과, 또 풍수설에서 두혈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화초는 고추를 많이 재배하던 곳으로 '고초골→곶초골→화초'가 되었다. '양뜸'은 양지바른 곳.
- 하갈ㆍ서촌ㆍ북촌ㆍ남촌 : '하갈'은 본 이름인 '치릇'을 상하로 구분한 명칭. '치릇'의 '릇'은 밭의 옛말'받→?, ㄹ+?→?→릇'이니 '칡받→칠앗→치릇'으로 본다.
- 상갈 : '하갈' 참조.
- 만대ㆍ원형동 : 만대는 전에는 '萬大'로 썼는데 일정 때 한문자 표기가 바꾸어졌다.
-
오룡리
1914년 오룡리, 구정리, 제내리, 검지리, 옥실리의 전 지역과 사오랑리, 사제면의 원촌리 각 일부로 구성됨. 이 이름은 풍수설에 오룡쟁주형이라 하여 그로써 취해졌다 한다.
- 옥실 : 전에는 '검지'에 속했었는데 1985년 한 분리로 독립되었다.
- 검지ㆍ제내ㆍ북간도ㆍ서당터 : 익산 구지에도 검지에 방죽 저제제가 있고, 제내에는 금음조제가 있다고 했는데 검지는 본시 검지로 썼으니 목과 관계된 이름일 것이다. '제내'는 '금음조제'의 안쪽마을. '북간도'는 북향한 마을로 만주의 북간도처럼 춥다는 뜻에서 익살스럽게 일컫는 이름.
- 도마리ㆍ큰뜸ㆍ작은뜸ㆍ푸다리 : '도마리'는 텃마을이라는 뜻이다. '도'는 옛지명에 '터'라는 말로 많이 쓰이고, '마을'의 준말 '말'에 접미사 '이'가 붙어 '마리'가 되었다. '텃마을'은 근처에서 먼저 이루어진 오래된 마을에 붙는 이름이다. '푸다리'에는 푸다리라는 다리가 있었다.
- 구정 : 근처에서 오래된 우물이 있어 '묵은샘→구정'이다.
- 사오랑 : 마을 형태가 사오리와 같아서 일컫던 이름.
-
연동리
1914년 연동, 채산리, 석불리, 장항리의 전 지역과 죽청리, 여산군 서산면의 신동 각 일부로써 구성되었다.
- 석불ㆍ태봉사 : 석불리는 전에는 연동에 속했었는데 1985년 한 분리로 독립되었다. 석불리에는 보물 45호로 지정된 석불좌상이 있다. '태봉사'는 현재에도 석불리에 있는 절이고 근처는 마을이다.
- 연동 : '연동'은 본시 방죽 연등동제가 있던 곳이다. '연등동'의 '등'은 이두자로 '들'로 읽어야 하니 '연들골'의 표기다.
- 채산ㆍ작은뜸ㆍ큰뜸 : 풍수설에 금채낙지라 하여 '釵山→彩山'이라고 전함.
- 죽청ㆍ장항동 : 대밭이 많아서 푸르다 하여 '대파라니→죽청'이라는 설과 또 바로 옆 골짜기 이름이 '큰골'이고 예전에 넓직한 곳을 대판이라 했으니 그런 뜻의 '대판이'라는 설도 있다. '장항동'은 그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 길게 빠져있어 본시 이름이 '노루목'인데 그것을 한문자로 표기한 것.
-
기산리
1914년 삼기리, 현동, 석암리, 점촌의 전 지역과 기산리, 사오랑리, 사제면의 석기리 각 일부로 구성되었다.
- 현동ㆍ아래뜸ㆍ윗뜸ㆍ등록동 : 현동의 본 이름은 '갊은 골'로 마을이 숲 속 으슥한 곳에 위치했기에 생긴 이름이다.
- 원기산ㆍ돌바우ㆍ아래뜸ㆍ윗뜸ㆍ쪽지밭골 : '기산'은 이명부터가 산 이름에서 취한 것이고, '원기산'은 이명인 '기산'과 구분한 명칭. '돌바우'는 길이 바위 옆으로 돌아가게 되어 생긴 이름. '쪽지밭골'은 밭이 다랑다랑한 쪽지로 되어 있어 일컫는 이름.
- 삼기산ㆍ마동 : 삼기산은 산이름에서 취해진 명칭. '마동'은 본 이름 '피매'의 한문자 표기고 '피매'는 피아마 즉 암말이라는 말이다. 마을 지형이 갈마음수형 중에서도 피마와 같다고 한다. '점촌'은 도자기를 만들던 곳.
- 석기매ㆍ윗뜸ㆍ아래뜸ㆍ장터골 : '석기매'의 원 이름은 '삿기메'로 작은 산이라는 뜻이며, 그것은 미륵산에 대한 새끼뫼다. 그런 뜻의 '삿기메'가 '셋기메'로 변하여 '세, 기, 메' 즉 삼기산이라는 산 이름이 되고 다시 '석기매'라는 한문자 이름도 생겼다. '장터골'에는 전에 시장이 있었다.
-
용연리
1914년 용연리, 당촌, 대제리, 소제리의 전 지역과 궁교리 일부로 구성되었다.
- 소제ㆍ당촌 : 용연리에는 예전부터 금가촌제와 소제 두 방죽이 있었는데 '금가촌제'를 큰방죽이라 하고 '소제'를 작은 방죽이라 했다. 따라서 소제, 대제는 방죽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된 것. '소지내'는 소제의 안쪽이라는 말. '당촌'은 신을 모신 당집이 있어 생긴 이름이고, '당너머'는 당재 너머라는 말.
- 대제 : '소제'참조
- 궁교 : 마을이나 뒤 산이 활처럼 굽었다 해서 생긴 이름. '활다리'의 '다리'는 여러 지명에서 '들'이라는 말로 쓰였다. '들'의 고어
- 필동ㆍ만수동ㆍ각동 : '필동'은 본시 궁교에 속했었는데 1937년 요교제 간척에 따라 마을이 커져 분립할 때 새로 마을 이름을 짓되 '궁교'의 활궁 자 둘을 넣어 필동이라고 했다. '만수동'도 요교제 간척 후에 생겨 새로 마을 이름을 지을 때는 '만수동'이라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수'자가 '수'로 바꿔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