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독립운동가, 의병. 호는 춘파(春坡). 익산 출신. 1908년 둘재아들 승호(承鎬)와 하께 향리에서 반일의병을 일으켜 동지를 규합하였다. 홍주의 민종식(閔宗植)이 패전한 뒤 그 패잔병 40여명을 수하에 모으고 각지의 의사와 연락하여 익산의 이규홍(李圭弘), 임실의 이석용(李碩庸), 무주의 문태서(文泰瑞), 고산의 유지명(柳志明), 청주의 신명선(申明善), 공주의 노인섭(盧仁燮) 등을 각기 두령으로 한 도지휘(都指揮)가 되었다. 그는 1909년 1월 용담 대불리에 위의 6진(六鎭) 장병 1,500여명을 모아 훈련 중 왜병의 습격을 받아 패전하고 심화로 병이 되어 집에 돌아와 둘째아들에게 계속 투쟁할 것을 유언하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