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열녀, 본관은 풍양. 참봉 신규의 딸, 전북 익산 출신.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니 전주이씨 가문에 출가하여 시부모를 극진히 섬기고 남편을 잘 받들며 이웃과도 화목하게 지냈다. 남편이 종성부사(鍾城府使)로 부임하게 되자 따라가서 남편의 뒷바라지하라는 시부모의 권유를 사양하고 집에 남아 시부모를 극진히 섬겼는데 갑자기 남편이 임지에서 병으로 사망했다는 부음이 전해지자 비통하여 기절했다가 유해를 맞아 장례 치르기 이틀전에 자녀를 모아놓고 나중에 죽거든 아버지의 무덤에 합장에 달라고 말하더니 발인할 때 상여소리를 듣고 기절하여 세상을 떠났다. 유림들의 주선으로 정려(旌閭)의 은전이 내려 익산군 용안면 화실리에 정문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