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검(李行儉, 1225∼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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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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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중기의 문신. 본관은 금마(金馬), 상서 좌복야 한림학사 승지(尙書左僕射翰林學士承旨) 이주(李湊)의 아들, 당시 금마군(金馬郡. 전주목) 출신.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진주사록(晉州司錄), 상서도사(尙書都事)로 직사관(直史館)을 겸하고, 지홍주사(知洪州事). 그 때 홍주가 삼별초(三別抄)에게 함락되어 이행검이 억지로 그들에게 가담하게 되었다. 그 때 추토사(追討使) 김방경(金方慶)이 삼별초를 토벌할 때에 이행검이 체포되었으나 김방경은 이행검이 자기 아버지의 문인이라 하여 그를 살려 주었다. 그 후 청주목사(淸州牧使), 지곡주군사(知谷州郡事), 풍주부사(豊州府使)를 역임했다. 그 후 충렬왕(忠烈王) 때 중서문하성 좌사간(中書門下省左司諫)이 되어 감찰어사 김홍미(金弘美)와 함께 정랑(正郞) 임정기(林貞杞), 봉의(奉議) 고밀(高密)의 고신(告身)에 대한 서경(署經)을 거부하여 귀양갔다가 이존비(李尊庇)의 주선으로 석방되었다. 그 후 전법사 좌랑(典法司 佐郞)이 되어 정화원비(貞和院妃)가 왕의 총애를 믿고 양민을 종으로 편입하려는 것을 극력 반대했다. 그 후 보문각 직학사(寶文閣直學士), 언부전서에 이르러 벼슬을 떠났다. 재직 중 강직하고 청렴결백하기로 이름났다. 이행검의 딸은 산랑(散郞) 기자오(奇子敖)에게 시집갔는데 기자오의 딸이 원나라에 공녀(貢女)로 뽑혀가서 순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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