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문신. 자는 희순(希舜), 호는 남고(南皐), 본관은 연일(延日), 익산군 북일면 출신. 판서 덕성(德成)의 후손, 석행(碩行)의 아들, 석봉 송산장(宋山丈)의 문인. 관찰사가 세 번 조정에 천거하되 처음에는 "연원(淵源)이 있는 집안으로 독실하고 진지하다."는 명목이었고, 두 번째는 "명가(名家) 자손으로 박학하고 아조(雅操)하다."는 명목이었고, 세 번째는 "경서를 궁구하고 벌써 배워 세상의 사표가 된다."는 명목이었다. 마침내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제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