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호(鄭濟鎬, 1819∼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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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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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 자는 시순(時舜), 호는 만포(晩圃), 본관은 연일(延日), 익산군 북일면 출신, 상룡(祥龍)의 5세손, 석행(碩行)의 아들. 1889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 전적(典籍),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을 역임했다. 1893년 당시 정치의 득실을 상소하여 권세가의 미움을 받아 승진하지 못했다. 1895년 을미사변(국모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던 중 공주 차령에서 낙마(落馬)하여 집에 돌아와 곧 죽었다. 1904년(광무 8) 충효견전(忠孝兼全)이라 하여 정려(旌閭)했다. 북일면 모현동에 정문(旌門)이 있다. 또한 익산 백산서원(柏山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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