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문신. 자는 자정(子楨), 호는 학포(學圃), 본관은 연일. 익산군 북일면 출신. 좌승지 정섬의 아들, 봉곡 김동준(金東準)의 문인, 1635년 사마시에 생원, 진사 모두 합격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군사를 모집하여 남한산성으로 가다가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말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653년 문과에 급제했으나 권신들의 뜻에 거슬려 크게 등용되지 못하고 예조좌랑(禮曹佐郞)에 그쳤다. (『익산지(益山誌)』에는 관이 대제학(大提學)으로 되어 있다.) 청렴하고 불의에 굴하지 않았다. 완주군 삼례읍 호산서원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