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락(崔禹洛, 1866∼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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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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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 자는 사범(士範), 호는 송사(松史), 본관은 강화, 평창군수 인규(寅奎)의 손자이며 통덕랑 종황(鍾黃)의 아들, 익산 출생, 1892년에 정시문과 병과에 급제, 이듬해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를 거쳐 1899년 홍문관(弘文館) 시독(侍讀), 용안과 이원(利原)군수를 지내고 1910년 정3품으로 승차하였으나 그해 한일합방으로 나라가 망하자 향리에 은둔하였다. 구한말 불모의 땅을 개간하여 전답을 일구고 익산 일대에서 만석지기의 부(富)를 이루었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으로 농토를 모두 일본인 농장지주에게 빼앗기고 울분을 머금은 채 살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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